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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남은 생이라도 밝은 모습으로 살다가 가야 하지 않을까요.”

손상민 사진기자 26-01-26 15:33 43 1
“마음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남은 생이라도 밝은 모습으로 살다가 가야 하지 않을까요.”

61년 만에 정의를 되찾은 최말자씨의 표정은 밝았다. 최근 부산여성의전화에서 여성신문과 만난 최씨는 “지금도 변함없이 복지관에 다니며 점심도 먹고, 요일별로 수업도 듣는다”며 “잘 지내고 있다”고 크게 웃었다. 61년 전 성폭력 가해자에게 저항하다가 다치게 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죄인으로 낙인찍혔던 최씨는 포기하지 않고 싸움을 이어가 마침내 승리하며 정의를 되찾았다. 여성신문은 최씨를 2025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지난해 복지관에서 동료 수강생들과 그림 전시회도 마친 최씨는 서울에서의 전시회를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씨는 만 18세였던 1964년 길을 모르겠다며 접근한 노모(당시 21세)씨에게 길을 알려주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최씨는 노씨에게 맞서는 과정에서 그의 혀를 1.5cm 가량 절단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가해자’로 내몰렸다. 심지어 노씨는 최씨의 집까지 찾아가 그의 잘린 혀를 찾아 달라며 난동까지 피웠다.

최씨의 저항은 누가 봐도 정당방위였지만 그는 중상해죄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노씨는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로 최씨보다 가벼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성범죄 가해자였던 노씨에게 강간미수 혐의는 적용조차 되지 않았다.


최말자씨는 최근 부산여성의전화에서 진행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했지만…포기하지 않고 재심 청구

그 뿐만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사회에 만연하던 시기 최씨는 경찰과 검찰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2차 가해를 당했다. 경찰은 끊임없이 최씨에게 노씨와 합의하고 결혼할 것을 종용했으며, 검찰은 고압적인 수사를 이어갔다.

“검판사가 잘못했어요. 경찰 단계에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됐지 않습니까. (검사는) 의자에 구둣발을 얹고 ‘이년아 남자를 병신 불구로 만들어놨냐’며 내 얼굴에 안 닿았다 뿐이지 주먹을 날리는 시늉을 했어요. 내가 쫄려 하니까 더 했겠지. 조사받을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억울해가 자다가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상상하기도 싫고, 너무 괘씸한 거예요.”

최씨의 억울함은 사건 발생 56년 만인 2020년에 그가 재심을 청구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60세가 넘어 입학한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성, 사랑, 사회’라는 수업을 듣던 중 피해자로 보호받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최씨는 방통대 동기인 윤향희씨의 도움으로 2018년 한국여성의전화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도 최씨에게 용기를 줬다.

재심 청구 과정은 험난했다. ‘여태 잘 살다 왜 힘든 길을 가느냐’는 반응부터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반응까지 다양했다. 초등학교 동창들은 ‘세상엔 더 억울한 사람이 많다’며 최씨를 만류했다. 실제 재심청구는 1·2심에서 잇따라 기각되기도 했지만 최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2020년 부산에서 열린 재심청구 첫 기자회견까지만 해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던 최씨는 어느덧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대법원 앞에서 당당히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갔다.


2025년 9월 1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최말자씨가 무죄를 선고받은 뒤 최씨와 최씨 측 변호인단,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방통대 동기·여성단체 등 승리 이끈 연대자들

방통대 동기와 교수, 여성단체, 변호인단, 일반 시민 등 수많은 연대자도 힘을 보탰다. 이들은 탄원서 제출부터 1인 시위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당초 재심청구를 반대했던 초등학교 동창들도 이내 최씨를 향한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최씨가 재심을 청구하기까지 함께 학교를 다니며 학업부터 컴퓨터 사용법까지 곁에서 도운 방통대 동기 윤씨의 역할이 컸다. 윤씨는 최씨의 이야기를 듣고 “여태까지 어떻게 참고 살았나. 우리 이 한을 풀자”고 말하며 용기를 북돋았다. 윤씨는 방통대 동기, 교수들을 찾아 탄원서 작성을 독려했다.

“대학 동기들도 탄원서 써주고 많이 했어요. 교수님들도 탄원서 써줬지. 회장(윤씨)이 교수님들한테 일일이 전화하고 그런 일들은 전부 다 자기가 한 거지. 그렇게 참 고맙게 열심히 해주니까 내가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그렇죠. 피가 섞이기를 했나. 서로가 말을 안 해도 통하는 데가 있어. 인연을 넘어 이건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이지.”

이 밖에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들과 부산에서 최씨를 지원한 배은하 부산여성의전화 성·가정폭력 상담소 소장,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를 비롯한 변호인단 등 수많은 이들이 물심양면으로 재심청구를 지원했다.

2024년 12월 대법원은 재심청구를 기각했던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최씨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다 파기환송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울었다”며 “그래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고맙기도 하고, 감동도 받았다”고 떠올렸다. 그리고 지난해 7월 열린 재심 첫 공판에서 검찰이 정당방위를 인정, 최씨에게 무죄를 구형한 데 이어 9월 부산지방법원은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방위로 인정돼 상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재심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가 처음으로 인정된 순간이었다.


최말자씨가 부산여성의전화에서 진행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정의 되찾았지만…아쉬움 남긴 재심 재판부 태도

비록 61년 만에 정의를 되찾았지만 재심 재판부의 태도는 아쉬움을 남겼다. 무죄를 구형하며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았어야 했을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깊이 사죄드린다”고 고개 숙인 검찰과 달리 과거 오판에 대해 사과하지도, 언급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 역시 재심 재판부의 태도를 지적했다. 그는 “황당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무참할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어 참 난감했다”며 “재심청구 기각을 두 번이나 당했었는데 아무런 변명도, 해명도 없으니 기가 찼다. 내가 무죄를 받은 게 맞나 싶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행히 두 달 뒤 이뤄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의 면담으로 최씨의 화도 조금 누그러졌다. 면담은 정 장관이 국가를 대신해 최씨에게 사과하기 위해 그를 법무부로 초청하면서 이뤄졌다.

“‘해명이나 변명이라도 해야지 어떻게 그런 것도 없이 이럴 수가 있는지, 대한민국의 지성인들이 이것밖에 안되냐’고 항의를 했어요. 그렇게 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해. 그리고 이제 장관님이 정중하게 모든 걸 다 받아들여주더라고. ‘고생했다’고.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받아들여주는 거예요. 그러니 너무 고마워서 반분이 풀렸어요.”


최말자씨는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은 피해자들에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당당하게 싸울 것을 조언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성폭력 문제 혼자 해결 어려워…당당히 도움 요청하길”

더 이상 피해자로만 머물지 않는 최씨는 지난 5년간 재심청구 과정을 거치며 여성인권운동가로도 거듭났다. 이제 최씨는 여성인권운동가로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부산인권정책포럼이 주최한 ‘2025 부산의 인권 5대 뉴스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했으며, 오는 23일에는 한국여성의전화의 정기총회에서 토크쇼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씨는 앞으로 몸이 허락하는 한 다른 여성폭력 피해자를 돕는다는 계획이다. “여성폭력을 막기 위해서라면 활동해야죠. 내가 건재해야 할 수 있을 거고. 당연히 해줘야지. 내를 위해 이만큼 애써줬는데 (받은 것의) 반까지는 못하더라도 10분의 1, 100분의 1이라도 활동해야지.”

특히 최씨는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은 피해자들에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당당하게 싸울 것을 조언했다. 최씨는 “성폭력 문제는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며 “세상 밖으로 나와 단체 같은 곳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용감한 형사들’을 많이 보고, 성폭력 사건을 굉장히 신경 써서 보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부산 돌려차기 사건’ 여성분은 너무 용감해서 마음이 좀 놓이더만. 과감하게 나서서 하는 거 보면 그리해야 돼요. 당연히 그리해야 다른 사람들도 보고 당당하게 싸울 수 있어요. 왜 숨어. 숨을 필요가 없어요. 옛날에는 (성폭력이) 수치였고, 너무나 가혹한 시대였기 때문에 나는 그런 시대에서 수모를 겪으며 힘들게 살았지만 여성단체나 변호사나 주변에서 이렇게 힘써주시니까 제가 지금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나는 당당하게 싸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출처 :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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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남은 생이라도 밝은 모습으로 살다가 가야 하지 않을까요.”

    61년 만에 정의를 되찾은 최말자씨의 표정은 밝았다. 최근 부산여성의전화에서 여성신문과 만난 최씨는 “지금도 변함없이 복지관에 다니며 점심도 먹고, 요일별로 수업도 듣는다”며 “잘 지내고 있다”고 크게 웃었다. 61년 전 성폭력 가해자에게 저항하다가 다치게 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죄인으로 낙인찍혔던 최씨는 포기하지 않고 싸움을 이어가 마침내 승리하며 정의를 되찾았다. 여성신문은 최씨를 2025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지난해 복지관에서 동료 수강생들과 그림 전시회도 마친 최씨는 서울에서의 전시회를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씨는 만 18세였던 1964년 길을 모르겠다며 접근한 노모(당시 21세)씨에게 길을 알려주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최씨는 노씨에게 맞서는 과정에서 그의 혀를 1.5cm 가량 절단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가해자’로 내몰렸다. 심지어 노씨는 최씨의 집까지 찾아가 그의 잘린 혀를 찾아 달라며 난동까지 피웠다.

    최씨의 저항은 누가 봐도 정당방위였지만 그는 중상해죄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노씨는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로 최씨보다 가벼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성범죄 가해자였던 노씨에게 강간미수 혐의는 적용조차 되지 않았다.


    최말자씨는 최근 부산여성의전화에서 진행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했지만…포기하지 않고 재심 청구

    그 뿐만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사회에 만연하던 시기 최씨는 경찰과 검찰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2차 가해를 당했다. 경찰은 끊임없이 최씨에게 노씨와 합의하고 결혼할 것을 종용했으며, 검찰은 고압적인 수사를 이어갔다.

    “검판사가 잘못했어요. 경찰 단계에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됐지 않습니까. (검사는) 의자에 구둣발을 얹고 ‘이년아 남자를 병신 불구로 만들어놨냐’며 내 얼굴에 안 닿았다 뿐이지 주먹을 날리는 시늉을 했어요. 내가 쫄려 하니까 더 했겠지. 조사받을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억울해가 자다가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상상하기도 싫고, 너무 괘씸한 거예요.”

    최씨의 억울함은 사건 발생 56년 만인 2020년에 그가 재심을 청구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60세가 넘어 입학한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성, 사랑, 사회’라는 수업을 듣던 중 피해자로 보호받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최씨는 방통대 동기인 윤향희씨의 도움으로 2018년 한국여성의전화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도 최씨에게 용기를 줬다.

    재심 청구 과정은 험난했다. ‘여태 잘 살다 왜 힘든 길을 가느냐’는 반응부터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반응까지 다양했다. 초등학교 동창들은 ‘세상엔 더 억울한 사람이 많다’며 최씨를 만류했다. 실제 재심청구는 1·2심에서 잇따라 기각되기도 했지만 최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2020년 부산에서 열린 재심청구 첫 기자회견까지만 해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던 최씨는 어느덧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대법원 앞에서 당당히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갔다.


    2025년 9월 1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최말자씨가 무죄를 선고받은 뒤 최씨와 최씨 측 변호인단,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방통대 동기·여성단체 등 승리 이끈 연대자들

    방통대 동기와 교수, 여성단체, 변호인단, 일반 시민 등 수많은 연대자도 힘을 보탰다. 이들은 탄원서 제출부터 1인 시위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당초 재심청구를 반대했던 초등학교 동창들도 이내 최씨를 향한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최씨가 재심을 청구하기까지 함께 학교를 다니며 학업부터 컴퓨터 사용법까지 곁에서 도운 방통대 동기 윤씨의 역할이 컸다. 윤씨는 최씨의 이야기를 듣고 “여태까지 어떻게 참고 살았나. 우리 이 한을 풀자”고 말하며 용기를 북돋았다. 윤씨는 방통대 동기, 교수들을 찾아 탄원서 작성을 독려했다.

    “대학 동기들도 탄원서 써주고 많이 했어요. 교수님들도 탄원서 써줬지. 회장(윤씨)이 교수님들한테 일일이 전화하고 그런 일들은 전부 다 자기가 한 거지. 그렇게 참 고맙게 열심히 해주니까 내가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그렇죠. 피가 섞이기를 했나. 서로가 말을 안 해도 통하는 데가 있어. 인연을 넘어 이건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이지.”

    이 밖에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들과 부산에서 최씨를 지원한 배은하 부산여성의전화 성·가정폭력 상담소 소장,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를 비롯한 변호인단 등 수많은 이들이 물심양면으로 재심청구를 지원했다.

    2024년 12월 대법원은 재심청구를 기각했던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최씨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다 파기환송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울었다”며 “그래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고맙기도 하고, 감동도 받았다”고 떠올렸다. 그리고 지난해 7월 열린 재심 첫 공판에서 검찰이 정당방위를 인정, 최씨에게 무죄를 구형한 데 이어 9월 부산지방법원은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방위로 인정돼 상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재심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가 처음으로 인정된 순간이었다.


    최말자씨가 부산여성의전화에서 진행한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정의 되찾았지만…아쉬움 남긴 재심 재판부 태도

    비록 61년 만에 정의를 되찾았지만 재심 재판부의 태도는 아쉬움을 남겼다. 무죄를 구형하며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았어야 했을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깊이 사죄드린다”고 고개 숙인 검찰과 달리 과거 오판에 대해 사과하지도, 언급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 역시 재심 재판부의 태도를 지적했다. 그는 “황당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무참할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어 참 난감했다”며 “재심청구 기각을 두 번이나 당했었는데 아무런 변명도, 해명도 없으니 기가 찼다. 내가 무죄를 받은 게 맞나 싶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행히 두 달 뒤 이뤄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의 면담으로 최씨의 화도 조금 누그러졌다. 면담은 정 장관이 국가를 대신해 최씨에게 사과하기 위해 그를 법무부로 초청하면서 이뤄졌다.

    “‘해명이나 변명이라도 해야지 어떻게 그런 것도 없이 이럴 수가 있는지, 대한민국의 지성인들이 이것밖에 안되냐’고 항의를 했어요. 그렇게 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해. 그리고 이제 장관님이 정중하게 모든 걸 다 받아들여주더라고. ‘고생했다’고.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받아들여주는 거예요. 그러니 너무 고마워서 반분이 풀렸어요.”


    최말자씨는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은 피해자들에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당당하게 싸울 것을 조언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성폭력 문제 혼자 해결 어려워…당당히 도움 요청하길”

    더 이상 피해자로만 머물지 않는 최씨는 지난 5년간 재심청구 과정을 거치며 여성인권운동가로도 거듭났다. 이제 최씨는 여성인권운동가로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부산인권정책포럼이 주최한 ‘2025 부산의 인권 5대 뉴스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했으며, 오는 23일에는 한국여성의전화의 정기총회에서 토크쇼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씨는 앞으로 몸이 허락하는 한 다른 여성폭력 피해자를 돕는다는 계획이다. “여성폭력을 막기 위해서라면 활동해야죠. 내가 건재해야 할 수 있을 거고. 당연히 해줘야지. 내를 위해 이만큼 애써줬는데 (받은 것의) 반까지는 못하더라도 10분의 1, 100분의 1이라도 활동해야지.”

    특히 최씨는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은 피해자들에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당당하게 싸울 것을 조언했다. 최씨는 “성폭력 문제는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며 “세상 밖으로 나와 단체 같은 곳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용감한 형사들’을 많이 보고, 성폭력 사건을 굉장히 신경 써서 보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부산 돌려차기 사건’ 여성분은 너무 용감해서 마음이 좀 놓이더만. 과감하게 나서서 하는 거 보면 그리해야 돼요. 당연히 그리해야 다른 사람들도 보고 당당하게 싸울 수 있어요. 왜 숨어. 숨을 필요가 없어요. 옛날에는 (성폭력이) 수치였고, 너무나 가혹한 시대였기 때문에 나는 그런 시대에서 수모를 겪으며 힘들게 살았지만 여성단체나 변호사나 주변에서 이렇게 힘써주시니까 제가 지금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나는 당당하게 싸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출처 :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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