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가정폭력의 비극… 산산조각 난 가족 그리고 눈물의 법정
#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 반복된 악의 굴레= 1975년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는 항상 폭력에 시달렸다. 술은 아버지를 ‘악마’로 만들었다. 어머니와 딸, 아들은 언제 폭발할지 모를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 했다. 기분이 좋아보이다가도 몇시간 뒤엔 불같이 화를 내기 일쑤였다. 술을 마실 때면 어김없이 폭언과 폭력이 이어졌다. 손, 발, 벨트, 빗자루, 재떨이, 심지어 각목까지도 날아들었다. 딸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는 일을 달고 살았다. 과일 행상을 하거나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고, 파출부로 남의 집안일을 하기도 했다. 작은 공장과 목욕탕에도 다니며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돈 벌어와라”, “아무 짝에 쓸모없는 식충이 같은 게”라는 말들로 찔러댔다.
폭력을 견디다 못한 딸은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다. 어머니는 딸을 살리기 위해 멀리 떨어진 서울로 떠나보내야 했다.
그 후로도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시동생과 장성한 자식들도 “내 가정에 상관 말라”는 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다. 어머니는 수시로 온몸에 멍이 들었다. 2014년엔 폭력을 피해 딸이 있는 서울까지 도망치기도 했다. 둔기로 맞은 머리에는 피가 맺혀 혹이 생겼다. 팔이 부려졌고, 허벅지가 골절돼 절뚝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경찰에 신고할 순 없었다. 자식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또다시 폭력이 있던 2016년 5월. 어머니는 손주 손을 붙잡고 집을 나왔다. 살아야 했다. 손주에게 더는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하지만 별거 생활은 5년도 채우지 못했다. 2019년 3월 아버지가 아파트 3층 높이에서 떨어져 다리를 크게 다치면서, 어머니는 병간호를 위해 다시 아버지를 찾았다. ‘미안하다’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 어머니는 이듬해 4월 딸과 이웃들의 반대에도 아버지와 다시 살림을 합쳤다.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폭력은 다시 시작됐다.
# ‘2만5,000원’의 비극= 5월 12일. 10년도 더 된 어머니의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꾼 날. 2만5,000원짜리 요금제. 그것이 단초가 됐다. “XXXX 같은 X” “니가 스마트폰을 쓸 줄 아느냐”.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을 12살 난 손주는 고스란히 지켜봤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죽이려 해요.”
전화를 받은 아들은 오후 7시 20분 112에 신고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땐 몸싸움도, 언성도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오후 8시 37분 퇴근한 아들과 어머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머니는 집에 있던 염산을 들고 “죽어야 끝이 나지”라며 아버지와 거실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2시간가량 이어진 싸움 끝에 어머니의 목을 조르는 아버지를 향해 아들은 주먹을 휘둘렀다. 이어 둔기로 뒤통수를 한차례 가격했다.
아버지는 피를 흘린 채 쓰러졌다. 어머니는 염산을 아버지의 입에 부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저항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얼굴, 가슴 등을 향해 수차례 둔기를 휘둘렀다. 둔기가 망가진 뒤에는 손으로 아버지의 목을 졸랐다.
아버지는 끝내 과다출혈로 인한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아버지 나이는 69세.
# “우리 아들은 잘못 없다” 마지막까지도 ‘엄마’였다= 어머니는 모든 범행을 자신이 저질렀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5차례의 경찰 조사 내내 어머니는 자신의 잘못이라고만 했다. 계속된 추궁에 어머니는 6번째 조사에서 아들의 범행을 털어놨다. 어머니(65)와 아들(41)은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아버지의 형제들과 딸, 유족이자 가족들은 두 사람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냈다.
7일 울산지법 301호 법정에 들어선 어머니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오열했다. 6시간여 동안 이어진 재판 내내 그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남한테 해만 끼치는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한테 안 좋은 짓만 해요. 욕하고 때리고. 할머니는 맨날 참았어요. (제가) 할아버지한테 뭐라고 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자신이 도맡아 키운 손주의 영상을 보자 어머니는 터져 나오는 감정을 막지 못했다. 덤덤하던 아들도 고개를 숙인 채 온몸을 떨었다. 손주는 보호시설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어머니는 글을 알지 못해 반성문조차 쓰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그가 법정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제발 우리 아들을 살려주세요”였다.
“이게 다 부모를 잘못 만나 일어난 겁니다. 다 제 탓입니다. 제가 다 안고 가겠습니다.”
검찰은 어머니에게 살인죄로 징역 12년, 아들에게는 존속살인죄로 징역 22년을 구형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날 재판에서 배심원 9명은 이들에 대한 유죄를 만장일치로 평결했다.
울산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박주영)는 배심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어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아들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이 단기간에 종료되지 않고 일정 시간 지속되고, 의식이 남아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남편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피해자가 가정폭력을 멈추지 못했던 것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보이고, 피고인(어머니)이 피해자를 원망하기보다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피해자 유족이 불행한 가정사를 들어 선처를 강력히 탄원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다만 아들의 ‘심신미약’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부모의 재결합을 권유해 사건에 이르게 했고, 둔기로 피해자를 때린 것이 사건의 시작이 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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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졌던 폭력은 ‘죽음’ 앞에서야 멈춰 섰다. ‘침묵’과 ‘희생’으로 어머니가 지키고 싶어 했던 ‘가족’. 수의(囚衣)를 입은 60대 노모는 끝내 조각나버린 ‘가족’이란 단어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 반복된 악의 굴레= 1975년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는 항상 폭력에 시달렸다. 술은 아버지를 ‘악마’로 만들었다. 어머니와 딸, 아들은 언제 폭발할지 모를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 했다. 기분이 좋아보이다가도 몇시간 뒤엔 불같이 화를 내기 일쑤였다. 술을 마실 때면 어김없이 폭언과 폭력이 이어졌다. 손, 발, 벨트, 빗자루, 재떨이, 심지어 각목까지도 날아들었다. 딸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는 일을 달고 살았다. 과일 행상을 하거나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고, 파출부로 남의 집안일을 하기도 했다. 작은 공장과 목욕탕에도 다니며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돈 벌어와라”, “아무 짝에 쓸모없는 식충이 같은 게”라는 말들로 찔러댔다.
폭력을 견디다 못한 딸은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다. 어머니는 딸을 살리기 위해 멀리 떨어진 서울로 떠나보내야 했다.
그 후로도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시동생과 장성한 자식들도 “내 가정에 상관 말라”는 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다. 어머니는 수시로 온몸에 멍이 들었다. 2014년엔 폭력을 피해 딸이 있는 서울까지 도망치기도 했다. 둔기로 맞은 머리에는 피가 맺혀 혹이 생겼다. 팔이 부려졌고, 허벅지가 골절돼 절뚝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경찰에 신고할 순 없었다. 자식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또다시 폭력이 있던 2016년 5월. 어머니는 손주 손을 붙잡고 집을 나왔다. 살아야 했다. 손주에게 더는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하지만 별거 생활은 5년도 채우지 못했다. 2019년 3월 아버지가 아파트 3층 높이에서 떨어져 다리를 크게 다치면서, 어머니는 병간호를 위해 다시 아버지를 찾았다. ‘미안하다’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 어머니는 이듬해 4월 딸과 이웃들의 반대에도 아버지와 다시 살림을 합쳤다.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폭력은 다시 시작됐다.
# ‘2만5,000원’의 비극= 5월 12일. 10년도 더 된 어머니의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꾼 날. 2만5,000원짜리 요금제. 그것이 단초가 됐다. “XXXX 같은 X” “니가 스마트폰을 쓸 줄 아느냐”.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을 12살 난 손주는 고스란히 지켜봤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죽이려 해요.”
전화를 받은 아들은 오후 7시 20분 112에 신고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땐 몸싸움도, 언성도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오후 8시 37분 퇴근한 아들과 어머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머니는 집에 있던 염산을 들고 “죽어야 끝이 나지”라며 아버지와 거실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2시간가량 이어진 싸움 끝에 어머니의 목을 조르는 아버지를 향해 아들은 주먹을 휘둘렀다. 이어 둔기로 뒤통수를 한차례 가격했다.
아버지는 피를 흘린 채 쓰러졌다. 어머니는 염산을 아버지의 입에 부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저항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얼굴, 가슴 등을 향해 수차례 둔기를 휘둘렀다. 둔기가 망가진 뒤에는 손으로 아버지의 목을 졸랐다.
아버지는 끝내 과다출혈로 인한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아버지 나이는 69세.
# “우리 아들은 잘못 없다” 마지막까지도 ‘엄마’였다= 어머니는 모든 범행을 자신이 저질렀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5차례의 경찰 조사 내내 어머니는 자신의 잘못이라고만 했다. 계속된 추궁에 어머니는 6번째 조사에서 아들의 범행을 털어놨다. 어머니(65)와 아들(41)은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아버지의 형제들과 딸, 유족이자 가족들은 두 사람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냈다.
7일 울산지법 301호 법정에 들어선 어머니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오열했다. 6시간여 동안 이어진 재판 내내 그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남한테 해만 끼치는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한테 안 좋은 짓만 해요. 욕하고 때리고. 할머니는 맨날 참았어요. (제가) 할아버지한테 뭐라고 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자신이 도맡아 키운 손주의 영상을 보자 어머니는 터져 나오는 감정을 막지 못했다. 덤덤하던 아들도 고개를 숙인 채 온몸을 떨었다. 손주는 보호시설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어머니는 글을 알지 못해 반성문조차 쓰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그가 법정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제발 우리 아들을 살려주세요”였다.
“이게 다 부모를 잘못 만나 일어난 겁니다. 다 제 탓입니다. 제가 다 안고 가겠습니다.”
검찰은 어머니에게 살인죄로 징역 12년, 아들에게는 존속살인죄로 징역 22년을 구형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날 재판에서 배심원 9명은 이들에 대한 유죄를 만장일치로 평결했다.
울산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박주영)는 배심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어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아들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이 단기간에 종료되지 않고 일정 시간 지속되고, 의식이 남아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남편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피해자가 가정폭력을 멈추지 못했던 것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보이고, 피고인(어머니)이 피해자를 원망하기보다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피해자 유족이 불행한 가정사를 들어 선처를 강력히 탄원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다만 아들의 ‘심신미약’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부모의 재결합을 권유해 사건에 이르게 했고, 둔기로 피해자를 때린 것이 사건의 시작이 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